독일 석사 첫 학기를 끝마쳤고 지금은 첫 방학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서 생명 쪽 석사는 방학이 없는데, 독일은 방학이 있다. 첨엔 문화충격이었음.)
독일에 온 지 반년이 지났고, 반년 동안 거의 글을 쓰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꽤나 지쳤던 것 같다.
차라리 아예 어린 나이에 유학길에 올랐다면 더 나았을까.
이미 한국에서 석사까지 졸업하고, 졸업 후 회사에서 따박 따박 안정적인 월급을 받다가 다 그만두고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니, 그것도 타지에서 모든 기반을 새로 쌓으려니, 참 힘들었던 것 같다.
무척 외롭기도 했고, 영어도 생각만큼 잘 안되고, 나보다 한참 어리고 영어 잘하는 외국인 친구들이랑 항상 나를 비교하며 나를 비참함 속으로 밀어 넣었던 것 같다.
그래서 글을 쓸 수 가 없었다. 내가 너무 초라하고 후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좋은 학점을 받으려고 아등바등 힘들게 살았는데, 여기선 당장 내가 시험기간이나 이런 때 며칠 더 밤새서 공부한다고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없겠다는 것 또한 일찌감치 깨우쳤기에 좋은 학점 받기는 첨부터 포기했던 것 같다. -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너무 목메지 말자. 이런 마인드로 살게 된 지 오래.
첫 학기에 내가 골라서 수강했던 강의는 computational biology 2였는데, 내 전공과목도 아니고 심지어 computational biology 학과 전공 중에서도 심화과목이었기에 내가 듣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있었던 과목이었다. 근데 난 바보같이 이걸 수강했지. 내게 닥쳐올 불행을 모른 채 맘 속으로는 해외 유학까지 왔는데, '도전'을 해봐야지! 이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은 해외 유학 자체가 '도전' 이라는 것ㅋ
첫 학기에 외국에 사는 걸 적응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하나도 모르는 타 전공과목을 수강하려니 매 수업시간 억장이 무너져 내렸고, 영어 수업도 수업인데 전공 내용 자체를 모르니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난 R와 파이썬에 대한 지식이 백지에 가까웠음)
영어가 문제인가, 전공이 문제인가를 고민했으나 -- 둘 다 문제였다.
결국 시험에서 떨어져서 재시험을 봄ㅋ
대학에서 재시험을 본다는게...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 처음에 정말 수치스럽고 부끄러워서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서른 살의 눈물...) 한국에서 그렇게 못한 적이 없던 것 같은데 여기서 진짜 똥 멍청이가 된 기분이라 하루하루가 참 고되고 힘들었더랬지...
문제는 저 과목만이 아니었고, 첫 학기에 세 과목을 들었는데, 세 과목 합쳐서 30 ECTS였다. 세 과목 모두 문제였음.ㅋ
아직 본격적으로 랩로테이션 같은 과목은 들어가지 않았지만, 첫 학기에 상당히 버거운 과목 및 수업량이어서 첫 학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첫 학기 동안 크고 작은 발표를 6번이나 했다. 진짜 할 때마다 총살 당하는 기분.
물론, 한국에서 석사 할때도 랩미팅이나 저널클럽에서 발표는 항상 했었지만, 항상 싫었었다.
근데 여기서 하는 발표는 정말 차원이 달랐음. 한국 석사 시절에는 그래도 디펜스 할 때만 앞에 나가서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일반 발표 할 때는 그냥 다 같이 앉아서 작은 방에서 내가 속한 랩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여기선 애초에 영어로 하는 것도 상당한 부담인데, 아직 랩로테이션 하기 전이라 랩에 속한 것이 아니므로, 수업에서 하는 발표가 대부분이었고, 그래서 항상 앞에 나가서 교수와 학생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1인 원맨쇼 발표를 해야 한다는 게 넘나 힘들었다. 항상 최소 30분이었고 질의응답이 필수였다.
한국과는 다르게 이곳 사람들은 굉장히 질의응답에 능숙했고 질문하는 것도 참 잘하더라. 이건 좀 부러웠다. 평생을 한국에서 학습하다 보니, 질문을 하는것도, 대답을 하는 것도 참 어색하고 어렵다.
외국인 학생 40명 앞에서 30분 짜리 논문 발표도 해봤고, 교수 7명+학생 4명 앞에서(이번학기 수강한 과목 중 하나는 학생은 총 5명인데 교수가 7명이었음) 연구 발표와 논문 발표도 해봤다.
염병. 정말 욕이 저절로 나왔다. 이번 학기 내내 참 지랄 맞은 상황이 지속됐는데 싫다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사실 도망칠까도 생각했음). 도대체 내가 뭘 위해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
다른 유학생들처럼 생명과에서 박사도 하고 싶고, 연구에 뜻이 있어서 여기 온 것도 아니고 걍 해외취업이 하고 싶어서 깔짝대다가 어쩌다 보니 두 번째 석사를 하러 여기까지 흘러온 건데.. 여기서 석사하고 있는 친구들 보면 연구 자체를 굉장히 좋아하고 사랑하는? 친구들이라 그런지 그 열정과 체력이 나랑 비교가 안 됐던 것 같다. 아마 그래서 더 주눅이 들었던 것 같기도. (그렇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연구에 열정도 없고 체력도 없었다. 그저 늙고 지친 퇴사한 k-직장인일 뿐)
사실 외자사에서 qa로 근무할 때도 크게 프레젠테이션할 일 이 없고, 하더라도 같은 팀 내에서 내용 공유 차원& 정보 전달 차원으로 하는 정도이다 보니, 발표 자체가 이렇게까지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래도 아카데믹 분야에 있다 보니 발표의 목적성이 좀 다르고 아직 학생이다 보니 경쟁 같은 것이 좀 있는 느낌이라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어쨌든 첫 학기에 제일 지랄 맞은 과목들이 모여 있었는데 거진 다 끝냈고, 이제 남은 학기들에는 랩로테이션을 몇 번 하고, 렉쳐 약간 듣고 master thesis를 쓰면 되는데... ㅋ 할 게 많네.. 아직도;;
어쨌든 다른 유학생들 보면 굉장히 해피-하고 다들 척척 잘하는 것 같은데 나만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열등감/ 좌절감에 첫 학기에 많이 울기도 울고 멘탈적으로 많이 무너졌었다.
그래도 머 어떡해... 이거 누가 가라고 떠민 것도 아니고 내가 선택한 건데, 그냥 해야지 머;; (오히려 다 말렸음ㅋㅋㅋ왜 퇴사하고 유학 가냐고.. 석사 왜 두 개나 따냐고, 뭐 하는 거냐고)
사실 나도 내 선택에 확신은 없었다. 그냥 지금 안 가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 해외로 나가는 것에 평생 미련이 남을 것 같아서... 내 삶의 모든 기반을 한국에 다 남겨두고 떠났다. (물론 이렇게 힘들지는 몰랐음! 생각을 그냥 안 했기 때무네...)
그래도 독일 와서 가장 좋은 점은 --> 해외에 대한 미련이 깔끔하게 없어졌단 것. 그거 하나가 제일 좋음. 안 와봤으면 평생 궁금해하고 미련이 남아서 힘들었을 것 같은데 이제 미련 따위 없음. 그런데 문제는 그래서 이제 다음 스텝이 뭘까.. 에 대해 나 스스로도 답을 모르겠다는 것ㅋㅋㅋ
원래 독일 처음 왔을 때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빠르게 졸업해서 해외취업을 하는 것. 그런데 여기서 몇 달 살면서 진짜 지독하게 외로워봤고, 공부하다가 넘 힘들었고, 인종차별도 종종 당하고, 너무 철저하게 이방인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보니.. 과연 내가 해외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음. 근데 또 한국에 가서 다시 직장생활? 이것도 참... 끌리지가 않고ㅠ
그저 완벽하게 길을 잃어버림! 여기서 취업을 하고 싶은지도 이젠 잘 모르겠는 지경ㅋ
십 대 때 안 온 사춘기가 지금 왔나 싶음...(역시 지랄 총량의 법칙)
우선 졸업까지 1년 반이 남았으니, 학교 다니면서 조금씩 생각해 봐야지... 싶음. 다만 쓸데없는 자기 연민은 하지 말고! 항상 웃으면서(억지로라도 웃는 중) 긍정적인 척하면서 살고 있다.
다행인 건 그래도 여기서 미니 잡을 구해서 지난달부터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도 첫 학기만에 외국인 유학생인데 바로 job 찾아서 면접보고 일자리 따낸 나 칭찬해... :)
내일은 아침 8시에 필라테스 가야 하는데 지금 새벽 1시네 큰일 났다. 못 가면.... 걍 못 가는 거지 머. 대충 되는대로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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